오늘 묵상은 영미권에 전해지는 엘레나 파스퀄리의 세 나무 이야기라는 책을 소개하며 시작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 세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꿈을 꾸며 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가 말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는 거야!
두 번째 나무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힘쎈 나무가 되는 거야!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타는 배가 될거야!
세 번째 나무는 나는 그냥 여기 있고 싶어!
하나님이 계신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고 싶거든
그리고 후에 첫번째 나무는 지저분한 말구유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나무는 초라한 작은 고깃배가 되었습니다.
세번째 나무는 아무렇게나 잘려서 십자가 사형틀이 되었습니다.
세 나무는 너무나도 실망되었습니다.
현실은 자기들이 꾸었던 꿈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세 나무는 각자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지저분한 말구유요,
초라한 고깃배요,
사람의 피의 흔적으로 뒤덮인 나무의 사형틀로 현실을 비관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저녁에 마굿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한 아이를 구유 안에 누이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예수님을 담는 구유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바람과 풍랑을 향해 소리치는 한 남자를 보았고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었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 초라한 십자가가 온 세상을 구원하는 생명나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 나무는 예수님의 복음을 영화롭게 드러내는 일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세 나무는 말구유로, 고깃배로, 비참한 사형틀로 지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지금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어떠한 길을 걷게 하셨습니까?
비록 각자의 길이 고독하고, 외롭고, 막막한, 험난한 길일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막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도시입니다. 헬라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서 기원전 5세기에 디아스포라로 유대인들이 집단 거주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000 km 정도 되는 아주 먼 지역입니다. 이 구레네 시몬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청년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왠지는 모르지만 골고다를 향해 십자가틀을 지고가는 주위에 울면서 그를 따라가는 여자들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멸시와 비방을 하며 그의 죽음을 보기 위해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십자가 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셨습니다.
로마 군병은 그의 옆에 영문도 모르고 서있던 이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틀을 대신 억지로 지운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피의 흔적이 묻어 있는 초라한 나무 형틀을 메고 가며 온 갓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조금 후에 그는 골고다에서 주님을 깨닫고 아들과 아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 16:13)
시몬의 아들 루포는 후에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아내는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말할 만큼 바울이 믿고 따른 귀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시몬의 집에서 자주 음식을 먹고 교제하면서 많은 유익을 얻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 그는 그 ‘억지로’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발견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큰 은혜였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의 집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졌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교제하며 자라는 곳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라는 내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주님은 그의 자녀들을 때론 억지로 가게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길을 혼자만 가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시몬과 함께 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더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를 바라셨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지금 억지로 가게 하는 일은 없는지요?
우리 시대 뉴스를 통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유럽연합과 강대국 미국이 경제, 산업 여러가지 내용으로 제제를 하고 있지만, 푸틴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다 이들이 경제, 산업이 기울고 끝에 몰리게 되면 마지막 때 전쟁이 단지 성경에 기록된 시나리오가 아님을 실감하게 합니다.
겔 38:12 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리라 하고 네 손을 들어서 황무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처하는 땅과 열국 중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
이제는 더 이상 영혼들을 전도하는데 미루어서도 타협할 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전도집회에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에 참여시켜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계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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