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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갈꼬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1. 12. 16.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by Paul Gauguin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언제 갈꼬?", "어디로 갈꼬?", "무엇을 위하여 갈꼬?"라는 질문을 만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욥의 "언제나 밤이 갈꼬?"입니다.

 

(욥 7: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욥 7: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의 대표인 욥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별 탈없이 건강했지만 몸 전체에 고약한 병이 도졌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열 명의 자녀들을 한날한시에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도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고, 서글퍼(자녀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언제나 이 밤이 지나갈꼬?"하며 도무지 잠을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큰 고난의 밤에 우리도 욥과 같이 "언제나 밤이 갈꼬" 탄식할 수 있습니다.

 

나병 환자를 치료하며 평생을 바친 미국의 '폴 브랜트 박사'에게 사람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에게 꼭 주고 싶은 마지막 선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그 질문을 받은 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아픔입니다."

아플 때마다 우리는 원인을 찾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 다가오는 고통은 우리를 그만큼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고난의 깊은 밤을 보낸 욥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이 내려왔고, 정금의 신앙이 되었고, 영육 간의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에게 고난 가운데 위로와 새 힘을 주는 욥기가 기록되었습니다. 욥의 고난이 도리어 욥기가 된 것이며 나의 고난도 도리어 신앙의 성장이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았던 핍박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보디발의 아내에게, 감옥에서 받았던 배신과 고난의 밤은 도리어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존 번연의 감옥살이가 도리어 천로역정을 낳았습니다. 한나가 자식을 못 낳아 마음이 슬펐던 것이 도리어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두 번째 '갈꼬'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리가 어디로 갈꼬?"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애굽 후 홍해를 통과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 문턱까지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12명의 정탐군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고, 얼마 후 그들의 생생한 후기를 듣게 됩니다.

 

 

(신 1: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신 1:28)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민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민 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민 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민 14: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세상에 난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간데 없어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서 죽게 하시려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하며 원망합니다. 방황합니다. 


"...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꼬?"

 

그들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약속의 땅에서 눈을 돌려 모세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장관을 임명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 불신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도우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두려움을 보고 절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믿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그림자 애굽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결과는 40년 간의 기나긴 방황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OUDHROoJ-k

Tish Hinojosa - Donde Voy "어디로 갈꼬?"

 

(신 1:30)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 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 1: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 1:33)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답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 앞서 행하시며 성도를 위하여 싸우시고, 밤에는 불기둥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지키시는 주님을 잊고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그곳에도 답이 없습니다.

 

 

(사 48: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사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사 48:19)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었다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을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무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가 있습니다.

 

 

세 번째 '갈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입니다.

 

(사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셨고, 이스라엘의 타락과 장차 올 심판을 알려주시고, 누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하여 갈꼬? 한탄하시며 일군을 찾으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열방의 선지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시고, 심판과 영원한 형벌 가운데 있는 자들의 영혼을 건지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단언컨대 이사야는 최고의 선택을 했습니다. 영원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소망 없는 땅의 것보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몇십 년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선택한 지혜로운 자이며 주님을 위해 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제법 괜찮은 갈릴리 호수의 어부는 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삶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룻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모압을 대표하는 유명한 돌아온 싱글이 될 수는 있었지만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노아, 아브라함, 모세, 요나, 사도 요한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애타게 일군을 부르고 계십니다. 

인생의 밤에서 '언제 이 밤이 지나갈꼬?'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인내하겠습니다.

세상의 큰 두려움을 만나게 될 때에 '어디로 갈꼬?' 방황하지 않고, 늘 도우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갈꼬?'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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