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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 >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1. 10. 13.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는 표현에 주목하면서 다음의 예화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프랑스 파리에 한 천재 조각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 예술가는 지붕 밑 초라한 다락방에서 살면서도 그는 삶의 초점을 온통 한가지 목표에 맞추어 작품을 만들고, 부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가 오랜 시간 고심하며 구상한 한 사람의 모습을 진흙으로 빚어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배고픔과 추위로 순간순간 작품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올라왔지만 모든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이 원하는 표정을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수개월을 진흙을 만지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작품을 제작하던 어느 날 밤, 마침내 그는 그토록 표현하고 싶었던 얼굴 표정을 흙으로 생생하게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간의 고통의 시간이 조금도 후회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런 작품이 탄생한 겁니다. 그는 벅찬 가슴과 뿌듯함으로 침대에 누웠지만, 자기 옆에 서 있는 점토 조각품을 보자 갑자기 염려가 생겼습니다. 그날 밤은 유독 추웠고, 난방시설이 없는 그의 다락방은 방금 빚은 점토에 배인 물이 얼어서 작품이 갈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어느새 컵에 담긴 물에 살얼음이 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난로 하나 없는 그의 다락방에서 유일한 보온 수단은 담요 한 장뿐이었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그는 자기가 덮고 있던 담요로 자신의 작품을 얼지 않게 잘 감싸서 덮어 주고는 자기는 추위에 떨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튿날 이 조각가는 불행히도 추위로 인한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점토 조각은 보존상태가 잘 유지되어 무명 예술인의 혼이 담긴 작품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이 천재 조각가의 작품은 지금도 파리의 한 박물관에 걸작품으로 전시되어 있지만, 누가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작품이 탄생한 경위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목숨을 걸고 작품을 만들었던 무명 조각가의 열정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열정이라고 하면 강렬한 긍정의 에너지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열정을 발휘할 때 고통을 느끼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열정에서 신나고 에너지가 넘치는 역동성만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정의 헬라어 어원인 "파토스(pathos)"에는 "고통, 질병, 괴로움"의 의미가 있으며, 라틴어 어원인 "파시오(passio/passion)" 역시 "고난"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정"의 어원이 "고통"으로 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정은 한 번에 타오르는 화염이 아니라 한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오랜시간 동안 꺼지지 않는 불씨와 같습니다. 그래서 열정이 더 많이 깃들이게 되는 경우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할 때"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많은 것들이 소진됩니다. 그 목표 지점이 멀고 험난할수록 자신의 모든 것, 시간, 건강, 물질,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희생을 가능하게 한 에너지원이 바로 열정입니다. 무명의 조각가가 힘들고 가난해도 자기 길을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 제작한 마지막 작품은 열정의 결과물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조각가의 열정은 배고픔과 가난 그리고 추위의 고통도 견디게 하고 목숨까지 바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흙을 빚어서 첫 사람 아담을 제작한 거룩한 조각가입니다. 흙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은 그분의 손으로 친히 우주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으로 우주보다도 고귀합니다.

 

그렇습니다! 무명의 조각가가 자신의 예술혼이 깃든 작품을 담요로 감싸서 보호했듯이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인간의 죄를 덮어 주심으로 우리 영혼이 멸망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셨습니다.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와라"라는 찬송이 떠오릅니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비록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했지만, 결코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열정이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수난을 왜 "Passion of Christ"로 표현하는지, 왜 수난과 열정이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 구원의 보증이 되어주신 성령님의 열정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신 겁니다. 이사야 2611절 말씀에,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르리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열성에 우리도 부응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새 창조물, 새 걸작품입니다. 작품에 가장 큰 애착을 갖는 사람은 작가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나를 깊이 사랑하시며 애착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느 작가, 여느 조각가 이상으로 주님의 작품으로 거듭난 새로운 창조물인 나를 사랑하시며, 나에 대하여 깊은 애착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한번 작정하신 일은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상관없이 진행하시며, 노심초사 나를 지켜보십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고통을 인내하신 예수님의 열정의 폭과 깊이를 우리는 온전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 깨달음 뒤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당하도록 맡기신 일을 멋지게 해내고자 하는 열정이 우리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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