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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1. 6. 12.

고린도전서 13장 2절의 마지막 부분에는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영어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가 "I am nothing"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또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우리 삶에 사랑이 없으면 우리 삶은 낭비된 것이요, 헛되이 산 것이다. 우리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또 이 말씀만큼 사람들이 오해하는 내용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랑'을 그저 인간적인 사랑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사랑'은 그저 주위의 사람을 도와주고, 배려해 주고, 마음 써 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적인 사랑도 물론 중요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뜻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일서 4:8, 16)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시고, 사랑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실 수도 행하실 수도 없는 분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가시고기의 부성애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가시고기는 암컷이 산란하기 전 둥지를 만든다. 주둥이로 구덩이를 만들고, 수초를 물고 와서 지붕을 만든다. 암컷이 둥지에 산란을 한 후 떠나면 알을 필사적으로 보호한다. 알을 보호하기 위해 위장막을 만든다. 알에게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둥지 앞에서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한다. 알을 노리는 붕어나 붉은귀거북이 오면 등의 가시를 세워서 쫓아낸다. 부화 후 15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가시고기는 결국 죽으면서 자신의 몸을 새끼들에게 먹이로 내놓는다. 때로는 가시고기의 자녀사랑이 사람보다 낫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가시고기

 

이 미물이 어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새끼를 보호하고, 결국 자기 몸을 먹이로 주기 위해 새끼들 앞에서 죽을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어디에서 왔을까? 이런 감동적인 사랑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가시고기의 부성애를 포함하여 모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의 동기는 사랑이시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조하셔서 아담과 하와가 살게 해 주신 모든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도 사랑이다. 지금도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한 순간이라도 거두어 가신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존재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정점은 독생자 죄인을 위한 대속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성육신의 사건이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묻히셨고, 부활하셔서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그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신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에 '이처럼'이라고 되어 있는 세 글자는 전 우주보다 더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짧다.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하나님 자신을 모두 주신 사랑이다. 생명까지 희생하신 사랑이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신 그 사랑이다. 죽음으로 보여주신 그 희생에 하늘이 빛을 잃고 어둠이 덮였다. 천사들은 숨을 죽이고 하나님의 독생자의 죽음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같은 영원하고 무궁한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인이 되었고,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죄인이 되어 일평생 죄 가운데 살던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전에 들었던 예화 중의 하나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평판이 안 좋고 악한 여인을 만나고 있어서 걱정이 된 어머니는 항상 아들에게 그 여인을 만나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 소식을 아들을 통해 들은 악한 여인은 그에게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면 어머니의 심장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악한 여인의 꾐에 빠진 아들은 술 취한 상태에서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어 손에 쥐고 여인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게 되었다. 그때 아들의 손에 들린 심장이 말하였다, "아들아, 다치지 않았느냐?" 어머니의 심장은 그 상황에서도 아들이 다쳤는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심장을 찢어 놓았다. 우리는 삶 속에서 거듭거듭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치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시며 우리 죄를 모두 사하시고 용서해 주셨음을 온 천하에 알리셨다. 그 사랑이 요한복음 3장 16절의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 여전히 잃어진 죄인이고, 하나님의 원수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마음에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 한 사람은 그 모든 기회를 허비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인생의 가치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이루어졌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헛되이 왔다가 헛되이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이루어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이 땅에 온 목적을 이룬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성공한 사람이고 승리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져 있는가의 여부가 우리의 영생을 결정한다. 그 사랑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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