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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 나비효과의 신앙교훈 ① >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2. 6. 27.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미세한 변화 혹은 사소한 행동이 발단이 되어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를 낳는 현상을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려보면, 나비효과는 원래 지구의 한편에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반대편에 와서는 태풍과도 같은 큰 결과가 되어 나타난다는 과학 이론에서 나온 말입니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 박사가 기상을 연구하다가 나비효과라는 개념을 발견합니다. 그는 이 모호하고 막연한 개념을 실제 사건을 들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아마존강의 밀림 지역에 어떤 나비가 날갯짓하면서 꽃가루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그 꽃가루는 원숭이 등에 떨어졌고, 원숭이는 가려워서 야자나무에다가 등을 비볐습니다. 그러자 야자수 열매가 떨어지면서 돌멩이 하나를 탁 쳤습니다. 이 돌멩이가 굴러가다가 바위를 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바위와 함께 돌무더기가 비탈길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산사태가 나면서 이 돌무더기가 냇물을 막게 되었고 산에서 계곡이 막히니까 물이 점점 차올라 산중턱의 분화구까지 다다랐습니다. 그러자 화산 가스가 나갈 곳이 없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산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 일대에 엄청난 기상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기상이 미국 뉴욕의 상공에까지 영향을 미쳐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게 되었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인구 천만이 넘는 미국 뉴욕을 강타하게 된 것입니다. 

나비의 미세한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그 파급력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묵상에서는 신앙적 차원에서 나비효과의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나비효과의 부정적 차원을 살펴보고, 다음번 묵상에서는 나비효과의 긍정적 차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에서 관련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호세아 8:7)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된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과 같은 허무한 우상을 만들고 섬기다가 광풍과도 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허무한 바람을 심었기에 이들은 철저히 파멸하는 광풍을 거두게 된 겁니다. 

다음으로, 바울 사도의 책망을 통해서도 같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죄를 누룩으로 비유해서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처럼 방치된 적은 죄가 교회 전체를 죄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누룩은 적은 양으로 많은 것을 부풀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의 본성도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를 버리지 않으면 증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부주의가 큰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종 대형사고의 원인이 의외로 아주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서 종종 발생하니까요. 아일랜드 난바다에서 침몰한 큰 배의 사고원인이 기상도 아니고 선체의 결함도 아닌 나침반에 박혀 있는 커터 칼조각 때문이었습니다. 나침반을 청소한 선원의 부주의로 커터 칼 조각이 박히게 되었고 그 결과 나침반 바늘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결국 거대한 배가 침몰하게 된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갈라디아서 5:9) 말씀처럼, 혹 부러진 칼날 조각만큼이나 적고 가볍다고 심지어 하찮은 누룩, 곧 죄는 무시하거나 경시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그리스도인 우리 성도의 생활 속에서 살피고 말씀에 의지해서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보다 오히려 신발 속에 있는 작은 돌조각이 우리의 걸음을 피곤하게 만들고 우리 성도가 멀리 행군하는 일에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인은 데살로니가전서(5:21-22)의 말씀대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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