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5:22-23)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태복음 15장에는 흉악히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는 이 여인이 헬라인이며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이 이방인 가나안 여자가 자기 민족이 섬기는 우상을 떠나 예수님께로 나아온 이유는 자기의 귀신 들린 딸을 고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며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이시라면 분명 자신의 딸을 고쳐주실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요청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신 이유는 이 여인을 만나시고 도와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적 기갈에 목말라하던 사마리아 여인과 그곳 사람들을 위해서 사마리아에 직접 방문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주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이라면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물리치지 않고 모두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쩐 일이신지 이 여인의 간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부르짖는 여인을 뒤로한 채 아무 말씀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인의 큰 소리를 참다못해 “우리 뒤에서 시끄럽게 하는 그 여인을 보내소서”하고 말씀드렸으나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하시며 도움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간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급기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라시며 여인을 개에 비유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자신에게 간절히 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외면을, 이후에는 거절을, 마지막엔 인격 모독적인 말씀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이 말을 듣고서야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시며 그녀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주님께선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셨고,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는데, 왜 처음부터 여인의 간구를 들어주지는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은 여인의 딸을 처음부터 고쳐주기를 원하셨으나, 또한 이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나안 여인과 같은 믿음의 기도 드리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내 딸을 불쌍히 여기소서’가 아닌,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여인에게 있어서는 딸과 자신이 연결이 되어 있어서 딸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이 무시를 당해도, 거절을 당해도, 인격 모독적 말을 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딸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사도는 주변 사람의 영혼 구원과 성도의 신앙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람이 자기 문제를 위하여 기도드릴 때는 형식적인 마음이 아닌, 간절한 마음으로 끈질기게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가나안 여인처럼 그것을 자기 문제로 여기고 기도를 드리는 것은 그를 위한 최선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또한 가나안 여인에게는, 자신의 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아닌 개라고 하더라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을 수는 있는 것처럼,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신 주님이시기에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입을 수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여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능력이 크신 분이시므로 예수님의 은혜의 부스러기만을 받더라도 자기 딸이 분명히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주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릴 때는 주님께서 분명히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특별히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우리시대에,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믿음을 더욱 보기를 원하십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