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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1. 6. 23.

하나님과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한 신랑과 신부는 한 동안 서로의 시선을 일치시키기 위한 조정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태어나면서 결혼까지 자신 개인의 계획과 생각대로,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 결혼 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의논하고 협력해서 마음을 함께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이전에 나의 생각대로 삶을 살아왔던 생활을 접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나의 삶을 맞추어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다혈질인 사도로 예수님을 충성스럽게 모신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베드로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다가 큰 책망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였을 때 베드로 사도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정확히 답을 하여서 예수님께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칭송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가르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며 예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저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에는 'rebuke'이라고 하여 예수님을 꾸짖으며 말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꾸짖은 유일한 사람이 베드로 사도일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출세할 마음을 하나같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청하였다가 다른 제자들이 분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실수는 무엇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난 성도들의 무리를 뜻합니다. 요즈음은 교회가 건물을 뜻할 때가 많지만 원래 교회의 의미는 '부르심을 받아 빼어낸 무리'라는 뜻의 '에클라시아'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반석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페트로스'라는 남성 명사로 조약돌이나 작은 반석을 뜻하는데 반해 예수님이 '반석'이라고 하신 단어는 '페트라'라는 여성형 명사로 '큰 바위'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반석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내용이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베드로는 마태복음 16장 23절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책망을 들었을뿐더러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인간 베드로는 결코 반석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 이외에는 아담의 후손으로 죄 가운데 빠져 멸망으로 향하는 비참한 죄인을 구원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안 된다고 꾸짖으며 하나님의 일을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 우리의 위치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여 넘치지만 생명의 부활 때에 영광되고 신령한 몸을 입기 전까지는 육신의 죄의 습성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다투는 영적인 전쟁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베드로처럼 육신에 져서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하기도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로마서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7장은 육신의 소욕과 싸우는 곤고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로마서 8장은 성령을 좇아 행하여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만 육신의 일, 사람의 일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일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계획과 육신의 소욕을 좇는다면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책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든 고통과 죽음을 감내하셨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육신의 생각을 좇았다가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설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과 육의 싸움이요 성령과 육신의 영적인 전투입니다. 남은 인생 주님이 다시 오셔서 죄된 육신의 구속을 얻을 때까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가운데 승리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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