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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어느 엄마의 죽음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1. 6. 14.

혜린이는 현관문을 열면서 엄마가 있는가부터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혜린이에게 쏟아부었다.

 

, 학원 가야 할 시간 알면서 왜 이리 늦었어! 전화는 왜 안 받아!”

 

지금 바로 가면 되잖아! 조금 늦은 것 가지고 왜 그래!”

 

저녁은? 빨리 와. 한 수저라도 뜨고 가자.”

 

됐어. 배 안 고파!”

 

혜린이는 자기 방문을 쾅 소리 내며 닫고 들어갔다. ‘집이 감옥이야, 감옥혜린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빨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갔다. 엄마는 팔짱을 끼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그런 혜린이를 바라보았다.

 

학원 끝나고 바로 와!” 엄마가 뒤에서 소리쳤다.

 

영어 학원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 수학 학원에서는 친구들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혼난 것.’이라며 친구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집에 와 보니 엄마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식탁을 보니 엄마가 준비해 놓은 저녁이 보였다.

 

엄마가 다짜고짜 물었다.

 

어디 갔다가 늦었어?”

 

난 친구들 만날 자유도 없어? 매일매일 로봇처럼 엄마 말 들어야 해?”

 

그럼 전화라도 받아야 하잖아?”

 

실은 편의점 앞에서 친구들이랑 음료수를 먹고 있을 때 전화가 왔었다. 몇몇은 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몰라, 진동으로 해 놓아서. 왜 날 매일 감시해!”

 

딸이 밤늦게 다니니 걱정이 돼서 그렇지! 너 혹시 학원 빠지고 전에 다니던 그 친구들이랑 몰려다닌 것 아니야?”

 

지난번에도 학원을 빠지고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는데 엄마가 우연히 지나가다 본 적이 있었다. 그중 친구 둘은 남자 친구까지 오라고 해서 함께 있는 것을 엄마한테 들킨 터였다.

 

엄마는 왜 매일 나만 의심해? 내가 뭐 범죄자야? 어떨 때는 엄마가 아니라 간수 같아! 여긴 감옥이고!”

 

얘가 무슨 말을 하니? 내가 엄마가 아니라니?”

 

그렇잖아. 엄마는 내가 재미있는 것은 다 안 된다고 하고, 하지 말라는 말만 입에 달고 있고. 정말 엄마 맞아?”

 

엄마는 어이가 없는 듯 서 있었다.

 

혜린이는 내친김에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왔다.

 

엄마가 내 엄마라는 증거가 있기나 한 거야? 내가 엄마 딸 맞아? 그런데 왜 이렇게 나만 못살게 굴어!”

 

증거라니. 내가 네 엄마지. 내가 배 아파 낳은 내 딸이지. 너 어릴 때 안고 있는 사진 못 봤어?”

 

사진? 그 사진 아기가 나라는 증거가 어딨어? 그리고 병원에서 아기가 바꿔치기도 한 대.”

 

얘가 무슨 말 하니? 아빠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다 증인이지!”

 

다 짜고서 말을 맞춘 거 아냐?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우리가 거짓말을 해? DNA 검사라도 해 볼래?”

 

엄마는 신문에서 읽은 DNA 검사를 생각해 냈다.

 

이래서 엄마는 과학을 배워야지. DAN 검사는 100%가 아니라 99.9999% 확률로 확인하는 거야. 0.0001% 잘못될 확률이 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100% 아니면 안 믿어!”

 

엄마는 황당하다는 표정과 어이없다는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혜린이는

 

나 배 안 고파. 들어가 잘래!” 하고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며 엄마의 표정을 생각하며 고소한 생각도 들고, ‘너무 했나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하지만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할수록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엄마가 저를 위해서 그런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 말을 들어 잘 되었을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 일이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하루는 옆집 친구 집에 갔다. 그 집에 아이스크림이 많았는데 마침 친구 부모님이 안 계셨다. 친구는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고 싶다며 계속 먹어댔고 혜린이는 엄마 말이 생각나 조금 먹다 말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날 저녁에 배가 아파서 병원에 실려 갔다.

 

혜린이는 엄마에게 너무 했나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했지만,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매캐한 냄새에 일어났다. 방문 밑으로 검은 연기가 슬슬 들어오고 있었다. 밖에서는 불이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여는데 검은 연기가 마구 들어오기에 창문을 닫았다. 방문을 열려는데 손잡이가 너무 뜨거웠다. 공기가 무척 더웠다.

 

엄마! 엄마!” 혜린이는 정신없이 엄마를 불렀다.

 

그때였다. 거실 쪽에서 혜린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방문이 열렸다. 엄마가 옷을 둘둘 말아 뜨거운 손잡이를 열고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거실은 이미 연기로 꽉 차 있고 부엌 쪽은 불길이 보였다. 엄마는 혜린아!” 부르며 혜린이를 무조건 부둥켜안았다.

 

혜린아, 빨리 나가자. 엄마만 따라와!”

 

집 안 전체가 연기로 뿌옇게 앞이 보이지 않는데 혜린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뭐에 걸려 넘어지려고 했는데 엄마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혜린이를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가까스로 현관을 나갔는데 검은 연기 사이로 소방관 같은 분들이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 얘 좀 데리고 가 주세요!”

 

엄마는 큰 소리로 외치며 뒤따라오던 혜린이를 밀 듯이 소방관들에게 넘겨주었다. 혜린이는 소방관들이 자기를 부축하는 순간 엄마를 보며 엄마는?” 물었다. 엄마는 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 연신 먼저 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혜린이가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병실에서 깨어나니 아빠가 옆에 앉아 있었다. 혜린이를 보고 혜린아, 정신 드니?”라고 물었다. 혜린이는 엄마는?”이라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엄마는 그날 혜린이를 소방관들과 보낸 후 집에서 갑자기 뿜어 나온 유독가스를 마시고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날 밤, 오전에 장을 보았을 때 잊고 못 산 것이 있어서 근처 편의점에 갔다 오는 길에 집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다고 한다. 혜린이가 아침에 잘 먹는 주스를 사려고 편의점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집은 이미 유독가스로 가득 차 있고 소방차는 멀리서 사이렌 소리를 내고 오고 있었다. 엄마는 혜린이를 구해야 한다고 들어간다고 했다. 주위의 이웃들은 위험하니 소방차를 기다리자고 했다. 엄마는 장 본 것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친 듯이 집 2층에 있는 혜린이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혜린이를 먼저 소방관과 함께 보내고 결국 유독가스에 질식해서 유명을 달리했다.

 

혜린이는 장례식장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엄마와 마지막 나눈 대화에 혜린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엄마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엄마가 엄마가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아니면 이렇게 나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엄마가 아니면 나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뒤에 남을 수 있을까? 엄마가 아니면 모두가 소방차가 오기를 기다리자고 하는데 미친 듯이 불이 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엄마가 아니면 아침에 먹을 주스가 없다고 그 늦은 밤에 편의점에 나갈 수 있을까?

 

그냥 내 멋대로 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몹쓸 말을 한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말로 엄마 마음을 후벼 파고 방문을 사정없이 닫은 것이었다. 과학이 어쩌고 확률이 어쩌고 하며 아는 체를 했던 거다. 해 준 밥을 안 먹으면 엄마 마음이 더 아플까 배가 고파도 안 먹은 거다. 그리고 이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엄마에게 혜린이는 수백 번을 반복해 말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내가 나빴어. 엄마, 돌아와. 이제 말 잘 들을게. 나 위해서 그런 거잖아. 나 잘되라고 그런 거잖아. 엄마...”

 

옆에서 가족들이 말려도 혜린이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아무리 울고, 소리치고, 흔들어도 엄마는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역사적, 과학적, 그리고 예언의 증거가 넘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일부러 배척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불가지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진위를 인간이 100%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불가지론자들도 비행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지 100% 알지 못해도 비행기를 타고, 음식점의 음식이 100% 안전하다는 것을 몰라도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습니다.

 

우리가 100% 논리적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100% 논리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지식일 뿐입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100% 이해할 수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DNA 검사가 0.0001% 오류의 가능성이 있어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이 되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99.9999%100%가 아니라서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일부러 믿지 않겠다는 억지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존재하고 성경이 진리라는 명백한 증거 앞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직무유기이자 변명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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