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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주가 쓰시겠다 하라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1. 11. 10.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 21:1-3

 

 예수님이 3년 반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가려고 하자, 나귀의 주인이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가 쓰시겠다라고 대답하였고, 주인은 즉시 나귀 새끼를 주님께 내어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스가랴서 9장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창조주 예수님이 얼마나 온유하시고 겸손한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예수님이 구세주와 평강의 왕으로서 우리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통치하실 것을 모형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위해 구별되고 주님에게 쓰임을 받는 한 마리의 나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이 모든 생물의 처음 태어난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18:15). 그런데 나귀는 부정한 짐승에 속함으로 나귀 대신 어린양을 잡아서 대속 제물로 바쳐 나귀를 살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나귀의 목을 꺾어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13:13). 예수님께 쓰임 받은 나귀 새끼가 첫 새끼였다면 분명 어린양으로 대속된 나귀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아담의 후손이자,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나귀처럼 부정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나귀 새끼처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영광과 기회를 받았으며,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성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부정한 우리가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고 주님을 모시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맞은편 마을로 나귀 새끼를 찾아가 끌고 온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만, 그 나귀 새끼를 부르신 분은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함을 받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주님께 헌신할 수 있는 모든 자리에 부르심을 받은 것은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확실한 소명의식은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만들어주며, 여러 가지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줍니다. 여러 가지가 이해되지 않고 불평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맡기신 일에 묵묵히 순종하게 만들고, 또한 교회를 통해 맡겨진 일이라면 작은 일에도 충성하고, 그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초라한 나귀 새끼가 주님에게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 앞에 우리가 참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나귀 새끼가 아름다워서 쓰임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자격이 있어서 쓰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움이나 자격을 따진다면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늠름하게 왕을 태우고 다녔던 백마가 더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나귀 새끼가 주님에게 귀하게 쓰임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귀하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 15:10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사람이고,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조금이라도 귀하게 쓰임 받는 부분들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나의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합니다.

 사람들이 겉옷을 펴서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것은 주님에게 드리는 영광과 경배였을 뿐, 나귀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통해 어떤 역사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우리와 함께하신 주님이 하신 일이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도, 교만할 것도 없으며, 오직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쓰시겠다고 부르시면 언제라도 즉시 순종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잠시 후 주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과 영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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