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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아침묵상

자유 의지와 진정한 사랑

by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1. 6. 18.

“아들아,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행복할 거야.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고.”

저는 그림 그리는 것이 좋은데요?”

그림은 취미로 할 수도 있어. 네가 아직 어려서 하고 싶은 게 많을 거야. 그런데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직업이 안정되어 돈도 많이 벌고 네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어.”

 

부모들은 때로 자신의 소망을 자녀들에게 투사합니다. 본인이 이루지 못한 소망을 자녀를 통해 대신 이루려고 합니다.

 

자녀들의 성취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조하며 사람들이 인정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성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결정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여자 친구에게 긴 머리가 어울린다며 단발머리를 반대하는 남자 친구는 실은 본인이 긴 머리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여자 친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자 하는 관심도 없고,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때로 사랑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적성과 상관없이 상위권 대학을 권하는 선생님은 학교의 명예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낮은 대학에 학생이 하고 싶은 전공이 아니라, 상위권 대학의 인기 없는 학과를 권합니다. 학생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합니다.

 

물론 부모에게는 자녀가 아직 어려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에게 권하는 내용이 부모 자신의 욕심이 아닌지 한 번쯤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실은 이웃, 친구, 친척 등의 눈을 의식해서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럴 때가 대다수입니다.

 

자녀가 엄마는 (또는 아빠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면 십중팔구 부모의 욕망이 투사가 된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유 의지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 없는 삶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못 견뎌합니다. 절대로 탈출할 수 없다는 감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하는 빠삐용에게 자유 없는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유가 없는 감옥에서 죽느니, 자유를 위해 시도하다 죽는 편을 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의 생각과 의견과 결정을 존중한다는 표현입니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뜻은 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실로 한계가 없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일 때에도 하나님은 인간들의 선택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어떻게 하나님이 피조물의 한 없는 방종을 용납하실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중하시고 사랑하십니다.

 

혹자는 하나님이 눈 앞에 나타나서 자신을 보이신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출애굽기 20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로 자신의 임재를 어렴풋이 나타내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떨며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라고 하며 공포에 떨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우주의 창조주이시자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영광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요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유 의지를 준다고 해서 항상 잘 못 나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유 의지를 주고 진정한 사랑으로 이끌 때 그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칼로 위협하여 혹은 그녀의 가족에게 해를 끼치겠다고 위협하여 함께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런 식으로 여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 한 왕이 마을을 시찰하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한 적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왕은 그 여인의 마음을 얻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왕이라고 밝히고 그 여인을 왕비로 데리고 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 여인의 사랑의 진정성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왕은 평민으로 가장해서 그 여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결국 그 마음을 얻고 결혼을 한 후 자신이 왕임을 밝혔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얻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독생자를 희생하여 죄인을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온 천하에 보여주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에 감동하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까, 헌금을 바치지 않으면 불행이 생길까, 주일 성수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까 두려움에 교회에 나오는 기독교인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지 않고 잃어져 있는 영혼입니다.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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