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아침묵상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2. 12. 4. 23:0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우리 찬송가에는 작시자와 작곡가를 알 길이 없는 서너편의 흑인영가가 실려있습니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모진 설움을 당하던 미국의 흑인노예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들의 설움을 신앙으로 승화시킨 찬송이 흑인영가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곡이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라는 찬송인데 이 찬송에는 애절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아프리카에 야곱이라는 흑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 라카엘과의 사이에는 여러명의 자녀들이 있었답니다.

야곱은 미국에서 온 노예상인들에 잡혀서 미국으로 끌려와 큰 목화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 농장의 주인은 잔인하기 그지 없었고 흑인들을 인간으로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몹시 고독했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눈물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야곱은 밭에서 일하다가 이집트에서 온 그리스도인 노예를 알게 되었고 그 그리스도인에게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노예를 위해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라는 복음을 전해 듣게 되었고 야곱은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야곱은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진 이 흑인 영가를 부르며 슬픔과 고통을 참았내곤 했습니다.

 

피부색이 검은 것 때문에 평생 가족을 떠나 노예로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이 억울함을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가 아니고서 그 무엇으로 위로 받을 수 있었을까요?

 

흑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말할 수 없는 설움을 당하는 그들은 너무나 비참한 일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도 않게 되었으나

자신의 죄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는 사실에는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떨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주님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은 떨려오네야곱은 이 은혜로운 찬송을 늘 부르다가 주님 곁으로 갔던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란 질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함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리실 때

주가 그 나무 위에 달리실 때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주를 그 무덤에 뉘일 때

주가 그 무덤에서 나올 실 때

'거기 있었는가'라는 진지한 물음에

 

우리가 깊이 마음속에 담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온갖 저주를 다 받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감당치 못할 고난은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고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한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십자가의 도가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도가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흑인노예였지만 그리스도인이었던 야곱은 어떠한 안타까움이 있었을까요?

주님의 사랑을 아프리카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요?

아마도 전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코로나19가 있다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전해지는 이번 한 주간,

주님의 뜻을 더욱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며 동참하실

형제자매님들을 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그 현장에는 있을 수 없었지만

십자가의 도가 전해지는 그곳에는 있었노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