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아침묵상

예수님의 눈물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2. 10. 4. 16:37

(요한복음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영어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에게 내는 잘 알려진 성경 퀴즈가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짧은 성경 구절이 무엇일까하는 문제입니다. 정답은 조금 전에 읽은 요한복음 11장 35절입니다. "Jesus wept." 영어로는 단 두 단어로 이루어진 가장 짧은 성경구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절친했던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도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하며 울었고, 함께 있던 유대인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신 것은 아닙니다. 조금 후에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살아날 나사로때문에 우실 이유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결과로 슬퍼하는 사람들의 곤고한 처지를 불쌍히 여기셔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나사로를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유대인의 강퍅한 마음과 그들이 받을 형벌을 미리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2:10~11)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더라

유대인들은 다시 살아난 나사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유대인의 강퍅한 마음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을 유대인들이 당할 끔찍한 형벌을 미리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누가복음 19:41~44)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과는 반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로마장군 타이터스가 예루살렘 성 주변에 토성을 쌓고 성읍과 성전이 훼파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군은 어린 아이들을 땅에 메어치며 잔인하게 110만명을 학살하고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파괴가 약 2,600여년전에 다니엘서 9장에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으로 경고해 주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회개를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마음을 돌이키려 하셨지만 유대인들은 끝내 비참하게 멸망하였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리며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가올 유다의 멸망에 대해 경고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바랐지만 결국 남유다는 바벨론의 손에 비참하게 멸망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로마의 군인에 의해 멸망할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성경에는 은혜시대에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하고 구원받지 않을 사람들이 당할 비참한 운명이 자세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요한계시록에는 7년 환난 시대에 무섭고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차라리 죽기를 구하는 죄인들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동료 등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다가 하나님의 무자비한 심판 앞에 고통당할 모습을 알기에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처럼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죄인의 운명이 눈 앞에 명백히 보이기에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복음을 배척할 때 또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한 번 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복음서에는 간절히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었다고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의 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를 올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통곡이라는 단어는 '크라우게'라는 헬라어로 '외치는 소리, 울부짖음'이라는 뜻입니다. 울부짖는 소리라는 '크라우게'라는 단어도 예수님의 고통을 생생히 보여주는데 그 앞에 '심한'이라는 수식어는 예수님이 얼마나 큰 마음의 고통 가운데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당하실 고통을 미리 아시고 큰 울부짖음과 함께 흘리신 눈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으로 슬퍼하고 괴로와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구세주를 배척하고 불신함으로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신 세상에서 우리가 마냥 즐거워하고 즐길 수는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눈물을 흘리고, 다윗도 눈물을 흘리고, 사도 바울도 눈물로 복음을 전한 이 세상에서 우리만 즐거워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잃어진 주위의 영혼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 앞에 두려움으로 떨며 영원한 지옥으로 향하는 영혼들을 생각하며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릴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