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아침묵상

요절 (夭折)

수원교회 전도인 일동 2022. 9. 13. 17:34

천국을 어떠한 것에 비할 수 있으랴!

 

요절 (夭折) - 찬송가 290장 괴로운 인생 길 가는 몸이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요절(夭折)'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 단명(短命)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평균 수명의 절반을 못 산 경우까지를 요절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보통 40세 이전에 죽는 경우를 요절이라고 했는데 의학의 발달 등으로

점차 사람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게 되면서, 40~50대에 죽는 경우도 요절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한 철학자는

죽음은 쓰라린 고통이지만,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한 죽음만큼 힘든 건 없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찬송가 290장은 영국의 토마스 로손 테일러 목사가 1835년 그의 죽음이 목전에 임박한 때에
그가 갈 하늘 본향을 그리며 쓴 찬송인데 그의 삶은 요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테일러목사는 18세에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남은 인생을 주님의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하리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하던 대학시절부터 그의 건강이 어찌나 위태로왔는지 그는 세상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동안 열심히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인근 각도시와 농촌을 두루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나 그의 유일한 담임목회지는 불과 6개월간의 쉐필드 하워드 거리교회였습니다.

그 후 그는 건강의 악화로 교단을 떠나야했습니다.

그는 부친의 전도를 도우며 살다가

183537일 풍전등화와 같았던 그의 건강은 끝내 지탱해 주지 못하여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마쳤습니다.

요절한 것입니다.

 

찬송가 290장은 세상에서의 괴로운 여정을 마치고 잠시 후

영원한 안식이 있는 하늘나라에 간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는데

특히 2절의 가사는 테일러목사의 처지를 그대로 노래한 듯 합니다.

 

2절

광야에 찬 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너머 눈보라 재우쳐(빠르게 몰아치는 모습)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 위에 떠내려오는 한 나약한 유리병처럼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그런 위험한 건강으로 살았던 그가

머지않아 가게 될 본향을 그리며 그의 아픔을 잊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신앙의 기쁨 속에 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우기, 그는 오래토록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에서 신음하다가 마지막 몇 달은 찬송과 기쁨 중에 살 수 있었기에 그는 분명히 그가 편히 쉴 곳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테일러 목사는

나는 이 땅의 나그네에 불과하고 천국은 나의 본향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기 전날 밤 남긴 마지막 설교는 내가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노병(老兵)이 되어 나의 손에는 말씀의 검을 들고 죽을 것이라는 그의 소망을 피력하였는데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설교를 한 바로 다음날 아침 그의 가족이 방문을 열어 보니 지난 밤에 누운 그대로였습니다.

그의 갑작스럽고 애석한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테일러목사처럼

우리의 생이 언제 마감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세상에 나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요절한 인생보다 더 안타까운 인생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지 못한 인생일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다면 주님을 위하여 살지 못하고 맞이하는 죽음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테일러 목사님의 요절은 안타까운 죽음이라 말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 290장은 장례식에서 많이 불리우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이 나를 위한 찬송이 될 때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언제 주님 만난다 할지라도

요절하는 인생이 될지라도

안타깝지 않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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